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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잡담] 안평대군과 안견의 '몽유도원도'일상기록/일상공유 2022. 12. 25. 21:4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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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세기의 그림은 화원과 문인들의 그림으로 나뉜다. 이 시대에는 중국의 여러 화풍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소화한 위에 우리의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다.
도화서에 소속된 화원으로는 안견, 최경이 가장 유명하였는데, 그 중에서도 안견은 중국과 우리 나라의 역대 화풍을 깊이 연구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. 안견의 대표작인 몽유도원도는 이상 세계를 그려 낸 것으로, 그 구도가 웅장하고 필치가 섬세한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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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고등학교 국사(상) 6차교육과정몽유도원도
중/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한 번이라도 들어본 이름이다.
애석하게도 현재 진품은 일본에서 보관 중이고, 2009년 이후로 외부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. 사실 나의 경우도 교과서로만 접해본 것이 전부이다. 하지만 그림 이름이 멋있다.
夢遊桃源圖 - 꿈에서 도원(복숭아 밭)을 유람한 것을 그린 그림.
잠깐 몽유도원도가 그려진 배경을 알아보자.
세종은 18남 4녀의 자녀를 두었고, 그 중 안평대군은 학문과 예술에서 뛰어나 글과 그림을 함께 어우르는 '서화합벽' 이라는 장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고 한다. 몽유도원도는 바로 이 '서화합벽'의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.
우리가 흔히 접했던 '몽유도원도' 그림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의 23점의 문장과 시를 담고 있다.
바로 세종의 셋 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이상향을 안견을 통해서 그리게 했다고 한다. (1447년)
꿈에서 그는 박팽년과 함께 복숭아 밭을 거닐었고, 이어서 신숙주 등도 함께 했다고 한다.
역사가 참 얄궂은 것이.. 이 몽유도원도에 이름을 남겼던 이들은 후에 모두 수양대군의 계유정난(1453년) 이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.
안평대군은 귀양 후 죽임을 당했고, 박팽년은 단종 복위 계획이 들키면서 죽었다. 그 유명한 김종서 또한 수양대군에 의해 목숨을 읽었고..
과연 안평대군은 꿈에서 어떤 낙원을 봤을까?
아름다운 몽유도원도가 결국은 살생부가 될지 누가 알았을까?
참고) 우리역사넷 - http://contents.history.go.kr/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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